처음에는 그냥 하얀 벽지면 되는 줄 알았다
이사 오기 전에는 도배가 이렇게 복잡한 문제인지 정말 몰랐다. 그냥 깨끗한 하얀색 실크 벽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부동산에서 보여준 사진 속의 방들도 다 거기서 거기 같았다. 그런데 막상 잔금을 치르고 이삿짐을 옮기려니 관리소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건물은 고층이라서 무조건 방염벽지를 써야 한다나 뭐라나. 방염 처리가 된 벽지가 일반 벽지보다 훨씬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배지 종류 하나 때문에 입주 전부터 예산을 이렇게 초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 가격이 거의 2~3배는 뛴다고 하니, 거실이랑 안방만 합쳐도 계산기 두드리는 손이 떨렸다.
방산시장을 가야 하나 고민하던 며칠
지인들은 방산시장 벽지 가게들을 가보라고 했다. 거기 가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데, 사실 직장 다니면서 평일에 시간을 내서 발품을 판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억지로 찾아간 곳들도 있었지만, 막상 가보니 방염 필증이 확실한 제품인지, 그리고 시공비는 얼마인지 따지다 보니 머리만 더 아파졌다. 요즘은 현대L&C 보닥 같은 인테리어 필름이랑 벽지 톤을 맞추는 게 유행이라는데, 그런 섬세한 디자인까지 고려할 여유는 사치였다. 그냥 불 안 나고, 법규에 안 걸리고, 깔끔하게 마감만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결국은 업체가 부르는 대로 했다
강릉이나 경기광주 쪽 도배 업체들을 몇 군데 수소문해보니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곳은 인건비가 터무니없이 비쌌고, 어떤 곳은 재료를 구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도배사 아저씨들이 오셔서 기존 벽지를 뜯어내는데, 뜯어낼 때마다 나오는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써도 코끝이 따가웠다. 벽지를 다 뜯고 나니 벽면 상태가 생각보다 더 엉망이라서 초배지를 새로 붙여야 한다며 추가금을 요구하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예산을 더 넉넉하게 잡을걸 싶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예정된 시간보다 작업이 반나절 더 걸렸고, 나는 그냥 옆에서 믹스커피나 타드리며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짐을 들이고 나서도 찜찜함은 남는다
도배를 다 끝내고 나니 확실히 깔끔하긴 하다. 그런데 요즘 신축 아파트에서는 방염벽지 때문에 가구 부착도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벽지에 손상이 가면 나중에 전세 나갈 때 원상복구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건데, 사실 이 비싼 돈을 들여 도배를 해놓고도 마음 편히 액자 하나 걸지 못하는 현실이 좀 웃프다. 벽지가 훼손되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방 배치를 바꿀 때도 벽에서 몇 센티미터는 띄워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이게 사는 건지, 벽지를 모시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불만족도 만족도 아닌 상태로
결국 도배가 끝난 뒤에도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남는다. 디자인은 생각보다 무난하게 뽑혔지만, 벽지 고유의 냄새 때문인지 며칠 동안 창문을 다 열어놓고 지냈다. 요즘 나오는 기능성 벽지들이 화재 예방에 좋다고는 하는데, 내 삶의 질이 직접적으로 나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법규를 맞추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다음번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도배 고민부터 다시 해야 할 텐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배라는 게 그냥 도배지 바르는 일인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걸까.

벽지 때문에 액자도 못 걸게 되니까, 정말 공간 활용에 제약이 많아 보이네요. 요즘은 디자인만큼 안전 규제 때문에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아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