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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 고르러 을지로까지 갔다가 그냥 포기하고 돌아온 날

을지로 방산시장에서 느낀 묘한 피로감

결혼하고 나서 첫 전세집을 구할 때만 해도 집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짐을 다 빼고 나니 벽지 구석구석이 엉망이었다. 2년 조금 넘게 살았는데, 고양이가 긁어놓은 자리랑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살짝 올라온 곳까지 합치니 도저히 그냥 이사 나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을지로 도배 거리로 나갔다. 사람들은 다들 을지로가 싸다고 해서 갔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샘플북은 왜 이렇게 많은지, 펼쳐놓고 보니까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나중에는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32평 아파트 전체를 도배하는 비용을 물어보니 대략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를 불렀는데, 이게 인건비 때문인지 자재비 때문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그 가격을 듣는 순간 갑자기 너무 지쳐버렸다. 그냥 대충 아무거나 고르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잠실 근처 업체와 주고받은 애매한 문자들

을지로에서 돌아온 뒤에는 집 근처인 잠실 쪽 도배 업체를 몇 군데 찾아봤다. 요즘은 다들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면 견적을 봐주길래 몇 곳에 찔러봤다. 24평 도배 비용도 업체마다 부르는 게 값이다. 어떤 곳은 120만 원을 부르고, 어떤 곳은 180만 원을 부른다. 며칠 동안 핸드폰만 붙잡고 이게 맞나 고민만 했다. 사실 도배라는 게 풀 바른 벽지를 사서 셀프로 해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34평 도배 견적을 한번 받아보고 나니 ‘아,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구나’ 싶었다. 예전에 친구가 셀프로 했다가 거실 벽 하나를 며칠 내내 붙잡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웃었는데, 내가 그 꼴이 날 것 같았다. 결국 업체 몇 군데를 추려서 방문 날짜를 잡으려고 했는데, 다들 일정이 꽉 차 있다고 해서 또 한참 기다려야 했다.

현장 실측 때 느꼈던 미묘한 불편함

도배하시는 분이 집에 오셔서 실측을 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깐깐하게 보셨다. 벽면이 고르지 않다느니, 부직포 작업을 새로 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추가 비용을 은근히 요구하는데 그게 참 거절하기 어렵다. 내가 미리 다 치워놓는다고 치웠는데도 짐이 조금 남아있으니까 그거 옮기는 비용도 따로 든다고 하셨다. 그냥 묵묵히 듣고 있자니 왠지 호구 잡히는 기분도 들고, 그렇다고 제가 할게요라고 하기엔 내 실력을 너무 잘 알아서 말도 못 했다. 그냥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양재동 쪽이나 다른 동네 지인들은 조금 더 저렴하게 했다던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다시 취소하기도 뭣해서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도배 끝난 후 남은 석연찮은 잔향

작업은 하루 만에 끝났다. 아침 일찍 오셔서 저녁 늦게까지 정말 고생하셨다. 결과물을 보니 확실히 깨끗해지긴 했다. 그런데 군데군데 벽지가 조금 덜 마른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쭈글쭈글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마르면 펴진다고 하셨는데, 지금 봐도 영 마음에 걸린다. 5년 된 아파트라 건물 연식 문제도 있다고는 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 도배지를 어디까지 배상해야 하는지, 그리고 새로 한 도배가 나중에 감가상각으로 어떻게 처리될지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 이사 가기 전까지는 벽지에 상처 하나 안 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올라온다.

여전히 남아있는 도배에 대한 의구심

결국 도배라는 게 끝내고 나면 만족감보다는 ‘이 돈을 들인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먼저 드는 것 같다. 특히 내가 벽지 색깔을 고를 때 너무 성급했나 싶기도 하다. 샘플북에서 볼 때는 괜찮았는데 막상 전체 벽에 바르고 나니 방 분위기가 너무 차갑다. 을지로 매장에서 봤던 조명 아래의 색감이랑 우리 집 거실 빛이랑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업체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까 하다가도 그냥 참기로 했다.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해봤자 내 마음만 더 상할 것 같아서다. 다음번에 이사 갈 때는 그냥 도배 잘 되어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 그런 집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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