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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 좀 뜯었다가 주말 다 보낸 이야기

시작은 그저 곰팡이 한 조각이었다

거실 구석에 핀 곰팡이를 보고 괜히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엔 그냥 물티슈로 닦아내려고 했는데, 벽지를 살짝 들추는 순간 안쪽까지 새까맣게 번져있는 걸 보고 눈이 뒤집혔다. 결국 칼을 들었다. 33년 된 구축 아파트라 벽지가 몇 겹이나 덧방 되어 있는지 떼어내도 끝이 없었다. 10만 원 안팎이면 사겠지 싶어 급하게 주문한 접착식 단열 벽지가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 예상보다 벽지 제거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뜯어낸 벽지 폐기물만 종량제 봉투 대형으로 두 개가 나왔는데, 이게 1,000원도 안 하는 봉투값이 문제가 아니라 이걸 들고 내려갈 생각에 벌써 머리가 아팠다.

생각보다 고약했던 벽지 밑 석고보드 상태

벽지를 다 걷어내고 나니 속살이 드러났는데, 세상에 석고보드가 군데군데 삭아있었다. 어설프게 덧댄 자국도 보이고, 누군가 예전에 타일 구멍을 메꾸려고 대충 발라놓은 석고 패치 같은 것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었다. 이걸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단열 벽지를 붙이면 나중에 다 들뜰 게 뻔했다. 동네 철물점에 가서 퍼티랑 사포를 사 왔는데, 총 25,000원 정도 썼나. 이 가루 날림이 정말 최악이었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콧속으로 하얀 가루가 다 들어오는 것 같고, 바닥에 떨어진 가루를 닦아내느라 걸레질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작업 환경이 깔끔하지 않으니 의욕이 점점 떨어졌다.

풀바른 벽지를 살걸 그랬나 싶은 순간들

접착식 단열 벽지는 그냥 붙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벽이 수직이 아니라는 걸 붙이면서 처음 알았다. 천장 쪽이랑 바닥 쪽 간격을 맞추려고 잡아당기면 중간이 울고, 중간을 맞추면 끝이 어긋났다. 도배 기술자들이 왜 돈을 받고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옆집 사는 아저씨가 예전에 용인 도배업체 불렀을 때 비용이 꽤 나간다고 투덜대던 게 생각났다. 그땐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꼴을 보니 차라리 전문가를 부를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물론 인건비가 비싸긴 하지만, 주말 이틀을 꼬박 날리고 허리 통증까지 얻은 걸 생각하면 과연 어느 쪽이 효율적인지 답이 안 나온다.

깔끔해진 벽면을 보고 든 묘한 기분

결국 붙이고 나니 멀리서 보면 꽤 그럴싸하다. 곰팡이 냄새도 안 나고 확실히 보온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의정부까지 가서 자재를 공수해온 보람이 조금은 있는 듯하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벽지를 보니, 내가 이어 붙인 틈새마다 살짝씩 어긋난 게 눈에 띄어 영 거슬린다. 누가 보겠냐 싶으면서도 자꾸 그쪽으로 눈이 간다. 구미 사는 친구한테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잘했다며 칭찬해 주는데, 이 짓을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 같다. 아마 다음번에 또 어디가 고장 나면 그땐 진짜 고민 없이 업체에 전화할 거다. 물론 그때가 되면 또 통장 잔고를 보며 망설이겠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석고보드의 미련

일단은 마무리했는데, 사실 구석진 곳에 아직 덜 메워진 구멍이 하나 있다. 나중에 액자나 뭘 걸어서 가려볼 생각인데, 이게 임시방편인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둬도 되는 건지 확신이 없다. 대리석 복원이나 욕실 타일 수리 같은 더 전문적인 영역은 쳐다도 보지 말아야겠다. 집은 확실히 사람이 살면서 손을 봐야 하는 게 맞는데, 그게 꼭 내 손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은 벽지 조각들은 다용도실 구석에 처박아뒀다. 나중에 또 곰팡이가 피면 그때나 다시 꺼내 보겠지. 아니, 제발 그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벽지 좀 뜯었다가 주말 다 보낸 이야기”에 대한 2개의 생각

  1. 벽지 제거하면서 겪은 일 정말 공감되네요. 저도 오래된 아파트에 살아서 그런 문제 때문에 한 번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곰팡이까지 발견하니 더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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